사명

능력은 약한 데서 나옵니다.

차재만 승인 2023.04.11 15:27 의견 0


목사 박은영

저는 목사 딸입니다. 아버지는 시골 미자립 교회를 옮겨 다니며 건축 사역을 했습니다. 인부를 살 돈이 없으니 아버지가 손수 벽돌을 쌓고 어머니는 모래를 채에 걸러 시멘트 반죽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몸에선 언제나 땀 냄새가 나고 먼지가 날렸으며 손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어린 저도 부모님을 도와 연장 심부름을 하고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사다 날리거나 겨울이면 연탄을 갈곤 했지요.

어릴 적엔 가난한 목사인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아빠는 목사가 아니라 목수를 했다면 성공했겠다.' 라며 속으로 빈정거리기도 했지요. 건축을 하면 성전이 없는 다른 미자립 교회로 옮겨 건축 사역을 이어가셨어요. 아버지의 입에서 '짐 싸자' 하는 소리가 나올까봐 가슴을 졸이며 자라야 했습니다.

박은영 목사

저희 집은 일용한 양식으로 살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금식하는 날이고 주님께 쌀을 주라며 눈물로 간구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거지가 집으로 참 많이 왔습니다. 밥 좀 달라고 구걸하는 이를 어머니가 쫓아내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앰프 마이크를 사용해 어서 오셔서 밥을 드시고 가라며 불러 자신의 밥을 그에게 먹여 보낸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굶고 대패질을 하거나 먹줄을 치곤 했지요. 배고파 서러운 시절이었습니다.

쌀 반 되가 없어 해수욕장 체험학습을 못 갈까봐 운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하늘 닿게 큰 대형교회와 고급차 운전수를 두고 거들먹거리며 다니는 목사들을 보니, 아버지의 목회관이 얼마나 빛이 나 보이던지요. 이제 아버지는 부끄러움이 아닌 나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목사란 비싼 양복을 입고 머릿기름을 번지르르 바른 자가 아닙니다. 교회에 자신의 형상 등신대를 세워 포토존을 만들고 설교 테이프를 팔며 명성을 드러내는 자가 아닙니다. 지교회들의 헌금을 거둬들이고 아들에게 세습을 하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봤을 땐 성공한 목회자요, 정치인들과 식사를 하는 능력자, 유명한 자이겠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땐 그는 노숙자, 거지, 비렁뱅이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목사란 무엇입니까.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예수의 길을 좇아 작은 자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바쳐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는 자입니다. 땀 냄새가 풍기는 더러운 일복을 입은 자입니다. 전도를 하다가 노숙자들에게 침 세례를 받고 뺨을 맞는 자입니다. 낡은 운동화를 신고 아픔을 당한 이를 찾아가 슬픔을 함께 나누며 우는 자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의 몸에선 땀 냄새, 눈물 냄새, 예수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기생오라비, 강남제비처럼 향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간절함이나 굶어 배를 주리는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사니 얼굴에 개기름이 줄줄 흐릅니다. 이런 목사들의 설교가 과연 영적인 양식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능력은 약한 데서 나옵니다.

제 아버지는 은퇴를 십 년 앞두고 여름 땡볕에서 홀로 교회 마당의 석축을 쌓다가 쓰러지셔서 구안와사로 조기 은퇴를 했습니다. 마지막 설교 때, 발음이 세는 아버지께서 삐뚤어진 입으로 어렵게 낭독하신 시를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장미의 기도 / 이해인

피게 하소서. 주여!

당신이 주신 땅에 가시덤불 헤치며 피 흘리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태양과 바람, 흙과 빗줄기에 고마움 새롭히며 피어나게 하소서

내 뾰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 되지 않게 하시며 나를 위한 고뇌 속에 성숙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주여! 당신 한 분 믿고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마음 가다듬는 슬기를 깨우치게 하소서. 진정 살아 있는 동안은 피 흘리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

-박은영 목사 약력-

1977년 1월 6일 강진 출생. 감리교신학대학원 졸업, 한국기독교대학신학대학원협의회 정회원, 2018 《문화일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우리의 피는 얇아서』, peyk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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