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백합화

장애인인권신문 승인 2023.04.15 11:53 의견 0

목사 박은영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교회의 한 성도께서 재정 보조를 받아 꽃꽂이 봉사를 하셨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예배당 청소를 하는 중에 그 성도와 아버지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어쩌죠?

-성도님, 무슨 일이십니까.

-꽃꽂이를 했는데요. 다 하고 보니 봉오리 진 연꽃을 제단 꽃꽂이로 사용하게 되었네요. 화원에서 꽃을 고를 땐 연꽃이 불교 꽃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를 어쩌죠?

백합화

-성도님, 꽃꽂이가 참 아름답습니다.

-목사님, 거룩한 성전의 꽃꽂이를 불교 꽃으로 해도 되나요?

-그럼요. 되고말고요.

-우상숭배의 꽃이잖아요.

-꽃은 잘못이 없습니다. 연꽃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꽃입니다. 불교 꽃, 기독교 꽃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꽃과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지요.

삼십 년도 더 지난 대화입니다.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고정관념이 깨진 까닭일 것입니다.

연꽃은 불교, 백합화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정한 건 조물주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연꽃을 부정하게 여기고 꽃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건 기독교인의 벽을 세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연꽃과 백합화를 하나의 꽃으로 보시고 천국에도 연꽃이 백합화와 함께 가득 피어있을 것입니다.

패를 가르고 싸우는 것은 인간입니다.

연꽃

정죄하지 마세요. 이방인과 타종교인을 지옥 갈 죄인으로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죄입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판단은 오직 하나님의 몫입니다. 나와 다른 타인 사이에 금을 긋고 분류를 하는 건 죄 없는 꽃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꽃은 죄가 없습니다. 연꽃은 불교, 백합화는 기독교, 나는 천국 갈 의인, 너는 지옥 갈 죄인이라고 분류를 할 시간에 무릎을 꿇고 회개를 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마음의 향기를 맡으십니다.

백합화만 꽃이 아니라 연꽃도 꽃이듯이 이방인, 타종교인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그들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손으로 만드셨으니 얼마나 귀히 여기겠습니까. 그러니 그들도 하나님의 자식인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모를 뿐이니,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고 권면할 형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주어진 자격에서 할 일은 오직 서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한복음15:12)"

이 땅은 진흙탕입니다. 흙을 입고 살다 진흙탕 싸움을 하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남을 정죄한 영혼은 진흙투성이고, 죄를 회개한 영혼은 정하고 고귀한 향기를 품어낼 것입니다.

우리는 진흙 속에 핀 연꽃이고 오늘 피었다 지는 풀꽃이거나 깊은 산속 벼랑에 핀 백합화입니다. 부디, 각자의 자리에서 회개의 향기, 선의 향기,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의인이 되길 바랍니다.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솔로몬의 입은 옷보다 아름다운 백합화처럼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을 용서하는 당신의 향기가 하늘에 닿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약력
박은영 1977년 1월 6일 강진 출생., 감리교신학대학원 졸업, 한국기독교대학신학대학원협의회 정회원

2018 《문화일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우리의 피는 얇아서』

peyk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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